"공멸 초하는 치킨게임 및 2자물류 폐해가 가장 심각"
반세기 정도경영 세방익스프레스
1965년 설립된 세방기업은 초창기 해상화물주선업 면허를 취득한 기업 중 하나로, 반세기 프레이트 포워더 역사를 함께해온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1994년 세방익스프레스가 분사되기는 했지만 그룹적인 차원에서본다면 큰 맥락은 차이가 없다. 태동기인 1970~1980년 대,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변화하는 1990년대, 양적 팽창기인 2000년, 무한경쟁시기인 2010년대로 구분을 한다면 이 모든 과정을 겪고 평가할 수 있는 연혁을 갖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로 세방익스프레스의 정호철 대표이사를 모시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포워더 모습에 대해 허시탄회하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 대담 : 김석융 본지 편집인 정리 : 윤훈진 차장
Q. 대표이사로 취임하신지 3년차 되시는데 그동안 어떠셨는지요.
A. 전임자(김옥현 현 세방(주) 대표이사)께서 7년동안 역임하실 당시 매우 어려운 시기였는데 각고의 노력으로 회사를 안정시키시고 모든 것을 다 해 놓으셔서 저는 무임 승차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대외적인 시장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여하튼 전임자 덕분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1983년 12월에 세방주식회사로 입사했습니다. 올해 33년차가 되겠군요.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인연으로 해외사업부에 근무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등 중동지역에 근로자 파송 및 항만관리를 했었습니다. 그 부서에서 1~2년 있다가 인사과로 옮겼고 이후 1986년부터 포워딩 사업부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이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986년 당시 해상화물주선업이 면허제여서 제한된 업체들만 포워딩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세방은 선두주자로서 제안된 내용이 법에 반영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지금보면 업무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포워딩 업무가 굉장히 생소한 업무였습니다. 화주로부터 물건을 받아 목적지별로 컨테이너에 적재(Stuffing)한 후 선사에 북킹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화물 픽업의 개념이 없었고 주로 FOB였기 때문에 지정 CFS로 화주가 직접 가져오면 FCR(Forwarder Cargo Receipt)을 발급해 주고 화주는 그 FCR로 네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화물을 받는 즉시 모든 책임을 인계받아 도착지까지 보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일주일에 어마어마한 컨테이너를 작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빈스라는 바이어의 경우 40피트 컨테이너 150대를 매번 선적했었고 AMC, 메이 디파트먼트, 제시페니 등 업체별로 주당 200~300개 선적했었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Q. 당시에는 수익력이 굉장히 좋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A. 맞습니다. 당시에는 결제 자체가 돈을 받지 않으면 진행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꾸 경쟁논리에 밀려 페이버를 주다보니 상황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포워더는 아시겠지만 선사에게 한달 정도의 결제 크레딧을 받고 있지만 지금은 시장에서 화주에게 결제받는 것이 4~5개월 씩 되는 것을 보면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운송에 대한 거래는 현금거래가 맞습니다. 네고가 끝나면 화주들이 바로바로 결제해줘야 하는데 지금 보면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립니다.
Q. 말씀하신대로 치킨게임이 본격화되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세방익스프레스는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A. 세방의 경영원칙은 선대에서부터 정도경영을 고집했고 이것이 기업문화로 정착되어 왔습니다. 다른 길과 방법들이 있었지만 그 길을 가지 않고 원칙적인 길만을 지키고 왔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화주들과 고객들로부터 인정받는 부분입니다.
정도경영이란 요즘 말하는 투명경영과 일맥상통합니다. 화주와 영업적인 관계를 맺을 때 담당자만 아는게 아니라 부서 차원 또는 관계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즉, 음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을 방지하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리베이트나 다른 음성적인 것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Q. 이런 원칙으로 인해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으신지요?
A. 사실 필드에서 뛸때는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고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알았고 비딩을 할 때도 되고 안되고를 떠나 당연한 원칙으로 알았습니다. 지금와서 경영자 입장이 되다 보니 일정 정도 필요했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와서보면 그당시에 그랬던 업체들이 많은 부침이 있었던 것을 보면,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편법적이고 음성적인 것으로 인해) 생명력이 지속적이지 못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도와 원칙을 걷는 것이 느린 것 같지만 제대로 가는 길이라고 믿고 앞으로도 원칙을 계속 지켜 나갈 것입니다.
Q. 기업을 지속하는데 있어 종사자들의 가치관이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세방익스프레스는 조직관리 또는 인재양성에 어떤 노력을 펼치시고 있습니까.
A. 제가 입사할 때 논술시험을 봤는데 그 때 문제가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당시에는 그런 내용이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방익스프레스만을 놓고 보면 가족같은 회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면 회사가 내보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평생 가족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여직원의 경우도 결혼후 아이를 갖어도 계속 직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보고 노사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세방익스프레스의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재채용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게 선발하고 자체 채용이 아니라 그룹공채로 뽑고 있습니다.
Q. 국제물류주선업의 전신인 해상화물주선업 첫 주자였는데 설립 이후 그동안 어떤 식으로 변모해 왔다고 보십니까.
A. 정확히는 세방기업이 해상주선업을 1977년에 받았고 해외사업부로 있다가 1994년 3월 세방익스프레스로 분사하게 됐습니다. 세방주식회사에서 분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업무부서로서 제시페, 월마트 등 미국의 큰 바이어들을 대신해서 바어어스 콘솔리데이션 역할을 해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업조직은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산업환경이 바뀌면서 대량으로 수출되던 의복, 신발, 장남감 등 바이어스 콘솔리데이션 물량들이 대부분 중국 등 제3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근간이 되던 업무부분은 많이 줄어들고 반대로 영업부분이 많이 성장하게 되어 지금은 영업부서가 4개 부서까지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었습니다.
즉, 현실 상황에 맞춰 변신을 신속하게 했던 것이 회사가 발전한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또한 3자물류에 포커스를 맞춰 시스템을 개발해 왔습니다. 즉, 화주로부터 오더를 받으면 그 이후의 업무를 저희가 다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개발했던 것이 역시 변모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제일모직(현재 삼성SDI)의 사례인데, 처음 접촉 당시 입찰공고만 보고 들어 갔었습니다. 당시 실제적인 업무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화주측에서 업무 프로세스와 전산적인 부분에서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소화하면서 3자 물류 영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삼성SDI가 제일 큰 고객이었습니다. 지금은 할인마트 고객들이 큰 커스토머로서 로컬 선적항에서부터 매장 배송까지 일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왠만한 할인마트는 세방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Q. 예전에 비해 수익력이 많이 약해졌다고들 합니다. 세방익스프레스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A. 말씀하신대로 예전에 비해 수익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희만 해도 5%에 불과한데 이것 마져도 높다고 하니 다른 곳은 어떻겠습니까. 옛날에는 훨씬 규모가 작았지만 수익률은 꽤 높았습니다만 중국산업의 급부상에 따른 중국 포워더들의 공격적인 비즈니스 방식으로 가격체계가 무너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출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고 수입은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어서 수익력은 더욱 낮아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습니다.
Q. 차세대 수익률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사실 금년에 베트남 하노이에 법인을 세웠습니다. 물론 후발주자이기 하지만 이를 통해 캄보디아 등 주변 인도차이나반도로 진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해외 글로벌 네트워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기존 비축자본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창고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냉동창고에 대한 수요가 많아 이를 알아보고 있고 부산신항만 배후부지도 재배정을 받아 투자할수 있도록 모색하고 있습니다.
Q. 대외환경, 업무방식, 가치관 등 여러가지 변화하는 시점에 프레이트 포워더로서 미래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기본적으로 정도와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원칙 없이 과당경쟁만 하는 시기는 없었던 같습니다.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그것을 주도할 세력과 힘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일본과 같이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코리아포워더타임즈와 같은 언론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화주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워더는 사람이 주가되는 비즈니스이라는 점에서 화주가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업계간 적정수준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반세기 정도경영 세방익스프레스
세방익스프레스(주) 정호철 대표이사
1965년 설립된 세방기업은 초창기 해상화물주선업 면허를 취득한 기업 중 하나로, 반세기 프레이트 포워더 역사를 함께해온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1994년 세방익스프레스가 분사되기는 했지만 그룹적인 차원에서본다면 큰 맥락은 차이가 없다. 태동기인 1970~1980년 대,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변화하는 1990년대, 양적 팽창기인 2000년, 무한경쟁시기인 2010년대로 구분을 한다면 이 모든 과정을 겪고 평가할 수 있는 연혁을 갖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로 세방익스프레스의 정호철 대표이사를 모시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포워더 모습에 대해 허시탄회하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 대담 : 김석융 본지 편집인 정리 : 윤훈진 차장
Q. 대표이사로 취임하신지 3년차 되시는데 그동안 어떠셨는지요.
A. 전임자(김옥현 현 세방(주) 대표이사)께서 7년동안 역임하실 당시 매우 어려운 시기였는데 각고의 노력으로 회사를 안정시키시고 모든 것을 다 해 놓으셔서 저는 무임 승차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대외적인 시장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여하튼 전임자 덕분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1983년 12월에 세방주식회사로 입사했습니다. 올해 33년차가 되겠군요.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인연으로 해외사업부에 근무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등 중동지역에 근로자 파송 및 항만관리를 했었습니다. 그 부서에서 1~2년 있다가 인사과로 옮겼고 이후 1986년부터 포워딩 사업부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이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986년 당시 해상화물주선업이 면허제여서 제한된 업체들만 포워딩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세방은 선두주자로서 제안된 내용이 법에 반영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지금보면 업무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포워딩 업무가 굉장히 생소한 업무였습니다. 화주로부터 물건을 받아 목적지별로 컨테이너에 적재(Stuffing)한 후 선사에 북킹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화물 픽업의 개념이 없었고 주로 FOB였기 때문에 지정 CFS로 화주가 직접 가져오면 FCR(Forwarder Cargo Receipt)을 발급해 주고 화주는 그 FCR로 네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화물을 받는 즉시 모든 책임을 인계받아 도착지까지 보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일주일에 어마어마한 컨테이너를 작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빈스라는 바이어의 경우 40피트 컨테이너 150대를 매번 선적했었고 AMC, 메이 디파트먼트, 제시페니 등 업체별로 주당 200~300개 선적했었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Q. 당시에는 수익력이 굉장히 좋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A. 맞습니다. 당시에는 결제 자체가 돈을 받지 않으면 진행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꾸 경쟁논리에 밀려 페이버를 주다보니 상황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포워더는 아시겠지만 선사에게 한달 정도의 결제 크레딧을 받고 있지만 지금은 시장에서 화주에게 결제받는 것이 4~5개월 씩 되는 것을 보면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운송에 대한 거래는 현금거래가 맞습니다. 네고가 끝나면 화주들이 바로바로 결제해줘야 하는데 지금 보면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립니다.
Q. 말씀하신대로 치킨게임이 본격화되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세방익스프레스는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A. 세방의 경영원칙은 선대에서부터 정도경영을 고집했고 이것이 기업문화로 정착되어 왔습니다. 다른 길과 방법들이 있었지만 그 길을 가지 않고 원칙적인 길만을 지키고 왔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화주들과 고객들로부터 인정받는 부분입니다.
정도경영이란 요즘 말하는 투명경영과 일맥상통합니다. 화주와 영업적인 관계를 맺을 때 담당자만 아는게 아니라 부서 차원 또는 관계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즉, 음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을 방지하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리베이트나 다른 음성적인 것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Q. 이런 원칙으로 인해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으신지요?
A. 사실 필드에서 뛸때는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고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알았고 비딩을 할 때도 되고 안되고를 떠나 당연한 원칙으로 알았습니다. 지금와서 경영자 입장이 되다 보니 일정 정도 필요했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와서보면 그당시에 그랬던 업체들이 많은 부침이 있었던 것을 보면,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편법적이고 음성적인 것으로 인해) 생명력이 지속적이지 못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도와 원칙을 걷는 것이 느린 것 같지만 제대로 가는 길이라고 믿고 앞으로도 원칙을 계속 지켜 나갈 것입니다.
Q. 기업을 지속하는데 있어 종사자들의 가치관이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세방익스프레스는 조직관리 또는 인재양성에 어떤 노력을 펼치시고 있습니까.
A. 제가 입사할 때 논술시험을 봤는데 그 때 문제가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당시에는 그런 내용이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방익스프레스만을 놓고 보면 가족같은 회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면 회사가 내보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평생 가족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여직원의 경우도 결혼후 아이를 갖어도 계속 직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보고 노사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세방익스프레스의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재채용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게 선발하고 자체 채용이 아니라 그룹공채로 뽑고 있습니다.
Q. 국제물류주선업의 전신인 해상화물주선업 첫 주자였는데 설립 이후 그동안 어떤 식으로 변모해 왔다고 보십니까.
A. 정확히는 세방기업이 해상주선업을 1977년에 받았고 해외사업부로 있다가 1994년 3월 세방익스프레스로 분사하게 됐습니다. 세방주식회사에서 분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업무부서로서 제시페, 월마트 등 미국의 큰 바이어들을 대신해서 바어어스 콘솔리데이션 역할을 해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업조직은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산업환경이 바뀌면서 대량으로 수출되던 의복, 신발, 장남감 등 바이어스 콘솔리데이션 물량들이 대부분 중국 등 제3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근간이 되던 업무부분은 많이 줄어들고 반대로 영업부분이 많이 성장하게 되어 지금은 영업부서가 4개 부서까지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었습니다.
즉, 현실 상황에 맞춰 변신을 신속하게 했던 것이 회사가 발전한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또한 3자물류에 포커스를 맞춰 시스템을 개발해 왔습니다. 즉, 화주로부터 오더를 받으면 그 이후의 업무를 저희가 다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개발했던 것이 역시 변모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제일모직(현재 삼성SDI)의 사례인데, 처음 접촉 당시 입찰공고만 보고 들어 갔었습니다. 당시 실제적인 업무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화주측에서 업무 프로세스와 전산적인 부분에서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소화하면서 3자 물류 영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삼성SDI가 제일 큰 고객이었습니다. 지금은 할인마트 고객들이 큰 커스토머로서 로컬 선적항에서부터 매장 배송까지 일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왠만한 할인마트는 세방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Q. 예전에 비해 수익력이 많이 약해졌다고들 합니다. 세방익스프레스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A. 말씀하신대로 예전에 비해 수익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희만 해도 5%에 불과한데 이것 마져도 높다고 하니 다른 곳은 어떻겠습니까. 옛날에는 훨씬 규모가 작았지만 수익률은 꽤 높았습니다만 중국산업의 급부상에 따른 중국 포워더들의 공격적인 비즈니스 방식으로 가격체계가 무너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출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고 수입은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어서 수익력은 더욱 낮아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습니다.
Q. 차세대 수익률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사실 금년에 베트남 하노이에 법인을 세웠습니다. 물론 후발주자이기 하지만 이를 통해 캄보디아 등 주변 인도차이나반도로 진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해외 글로벌 네트워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기존 비축자본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창고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냉동창고에 대한 수요가 많아 이를 알아보고 있고 부산신항만 배후부지도 재배정을 받아 투자할수 있도록 모색하고 있습니다.
Q. 대외환경, 업무방식, 가치관 등 여러가지 변화하는 시점에 프레이트 포워더로서 미래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기본적으로 정도와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원칙 없이 과당경쟁만 하는 시기는 없었던 같습니다.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그것을 주도할 세력과 힘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일본과 같이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코리아포워더타임즈와 같은 언론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화주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워더는 사람이 주가되는 비즈니스이라는 점에서 화주가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업계간 적정수준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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